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.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,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.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누르 앗 딘 마흐무드 (문단 편집) === 살라흐 앗 딘과의 갈등과 최후 === 1170년, 그 동안 모술을 지배해왔던 누르 앗 딘의 동생인 쿠틉 앗 딘 마우두드가 사망했다. 쿠틉은 비록 형식상으로 누르 앗 딘에게 복종하고 있었으나 여전히 모술의 실질적인 지배권을 쥐고 있었다. 누르 앗 딘은 그런 동생이 사라지자 조카인 시아프 앗 딘 가지 2세에게 명목상으로 모술의 지배권을 주었으나 실질적인 권한은 모두 자신이 차지했다. 이 해에 이르러 살라흐 앗 딘 또한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었다. 이집트 내에서 자신의 입지가 불안하다고 생각했던 그는 자신의 친족들을 이집트로 불러들여 자신을 도와줄 것을 청했다. 이때 그의 아버지인 아이유브도 살라흐 앗 딘에게 합류했다.[* 살라흐 앗 딘은 자신의 이집트 와지르의 직위를 아버지에게 건네줄 것을 제안했으나, 아이유브는 아들이 잡은 행운을 가로채고 싶지 않다고 거절하며 대신 재무상의 직위에 만족했다.] 이처럼 살라흐 앗 딘은 점차 이집트 내에서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는 작업에 착수했고 그 과정에서 내시장 네자흐를 비롯한 자신의 반대세력들을 숙청해나갔다. 1171년, 마침내 이집트의 실권을 거의 장악한 살라흐 앗 딘은 파티마 왕조의 시아파 신앙을 수니파 신앙으로 교체한다는 야심찬 계획을 실행에 옮기고 있었다. 그에 따라 파티마 왕조 내에서도 수니파 종교 교육이 실시되기 시작했고, 이 소식을 들은 바그다드의 칼리프는 몹시 기뻐하며 누르 앗 딘에게 예복과 아바스 왕조를 상징하는 검은 기를 비롯한 선물을 건네주었다. 물론 살라흐 앗 딘 또한 이런 선물을 받았다. 이는 시아파 신앙을 대표했던 파티마의 칼리프 알 아디드의 권위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일이었으나, 이때 알 아디드는 병석에 누워 사경을 헤메고 있었기 때문에 살라흐 앗 딘이 이런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은 꿈에도 알지 못한채 21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하고 말았다.[* 살라흐 앗 딘은 다 죽어가던 파티마의 칼리프가 면담을 요청하자 자신을 해치려는 음모가 있다고 의심해 거절했으나, 파티마의 칼리프가 죽은 후에야 그가 진심으로 자신을 찾았음을 알게 되자 뒤늦게 후회했다고 한다.] 알 아디드의 죽음과 함께 파티마 왕조의 수도인 카이로는 살라흐 앗 딘의 수중에 들어가 파티마 왕조는 사실상 철폐되었고 그 왕족들은 남녀로 구분되어 엄격한 감시하에 수용되어 여생을 보내야 했다. 이처럼 살라흐 앗 딘의 세력이 강성해지자 누르 앗 딘은 점차 살라흐 앗 딘에 대한 의심을 키워나갔다. 더욱이 1173년에는 누르 앗 딘과 살라흐 앗 딘의 사이를 중재해주던 살라흐 앗 딘의 아버지 나짐 앗 딘 아이유브가 낙마 사고로 사망하면서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다. 급기야 누르 앗 딘이 살라흐 앗 딘의 위세를 꺾고 그를 이집트에서 축출하기 위해 군대를 모으기 시작하면서 시리아와 이집트 사이에는 전운이 감돌기 시작했다. 그로서는 살라흐 앗 딘이 이집트를 기반으로 독자적인 세력을 일으키고 있다고 의심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. 그러나 이듬해인 1174년 5월 15일, 누르 앗 딘은 56세의 나이로 갑자기 발병한 후두염으로 사망했다. 아무리 그의 나이가 50대 고령이었다곤 하지만 그의 죽음은 누구도 예상치 못한 것이었는데, 그도 그럴듯이 그는 불과 몇 일 전만 하더라도 측근들과 함께 말을 달리며 인생의 불확실함에 대한 철학적 토론을 나눌 정도로 건강했기 때문이다. 누르 앗 딘의 사후에 그의 지위를 계승한 후계자는 불과 11세에 불과한 어린 아들 앗 살리흐 이스마일이었다. 강력한 군주인 누르 앗 딘이 갑자기 사라지고 어린 술탄이 등장하자 장기 왕조는 급격히 분열되어 쇠퇴하기 시작했다. 살라흐 앗 딘은 이런 혼란을 틈타 1174년에는 다마스쿠스에 입성하며 스스로를 이스마일의 섭정이라 자처했으며 1175년에는 누르 앗 딘의 조카인 모술의 시아프 앗 딘 가지를 격파했고 1176년에는 누르 앗 딘의 미망인[* 앞서 언급한 우누르의 딸이다.]과 혼인하여 시리아까지 지배하게 되었다. 1181년에 이스마일이 어린 나이로 요절하고 그 사촌인 이마드 앗 딘 장기 2세가 뒤를 이어 알레포를 차지했으나 그 또한 1183년에 죽었고 결국 알레포 마저 살라흐 앗 딘의 손에 넘어갔다. 이렇게 해서 장기 왕조는 사실상 망했으나 누르 앗 딘의 바람대로 레반트와 이집트에 걸쳐 십자군에 대항할 이슬람 통일 정권이 구축되었다. 장기 왕조의 잔당들은 누르 앗 딘의 형이 상속받았던 모술과 이라크 북부에서 아이유브 왕조가 멸망할 때까지 간신히 명맥을 유지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